조선시대 사림과 붕당의 형성

조선시대 사림과 붕당의 형성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사림의 4대 사화 -

 

15세기 조선 건국 세력이었던 훈구는 세조의 계유정난으로 권력을 잡는다. 그러나 16세기 무렵 사화(사림이 당한 재앙)를 통해 사림을 몰아내려 하였으나 사림의 집요한 탄핵으로 훈구는 세력을 잃게 된다.

 

무오사화 (연산군) : 김종직의 조의제문이 발단

갑자사화 (연산군) : 폐비윤씨의 죽음과 복위문제로 일어난 사화

기묘사화 (중종) : 조광조의 위훈삭제가 발단

을사사화 (명종) : 외척인 대윤과 소윤 간의 다툼

 

-사림의 분열과 붕당의 형성-

 

1572(선조5) 사림은 인사권을 쥔 이조 전랑 관직을 누가 차지하느냐와 훈구세력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따라 내부 분열이 이루어진다. 그중 강경파는 김효원을 따르는 쪽은 동인, 온건파 심의겸을 따르는 쪽은 서인으로 나누어진다. 이황과 조식을 따르는 제자들은 주로 동인이 되었고, 정철 등이 있는 곳은 서인이 된다. 율곡 이이는 특정 당파가 없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이와 성혼은 서인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선조시절, 정여립의 모반사건이 일어난다. 동인이였던 정여립의 모반 사건으로 동인들은 대규모 숙청을 당한다. 이때 서인이였던 정철이 기축년에 감옥에서 관련자들을 벌하고 대규모로 숙청하였기에 이를 기축옥사라고 말한다.

동인은 정철의 건저(왕의 후계자인 세자를 세우는 일)의 사건으로 정철을 유배시키고, 기축옥사의 보복을 한다. 이때 정철의 처벌을 두고 동인은 분열한다. 강경파는 북인이고, 온건파는 남인이다.

 

임진왜란 때 주전론을 주장하고 의병장을 배출한 북인이 먼저 정권을 장악했고, 광해군을 지지하는 북인은 임진왜란 이후 영창대군의 어머니인 인목대비를 폐위시킨다.

폐모 사건에 반발해 서인과 남인이 인조반정을 일으키게 되고, 북인은 숙청당한다. 그 후 이괄의 난으로 북인이 또 숙청되면서 북인은 정계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서인과 남인은 북벌론과 예송논쟁으로 집권과 실각을 반복하다가 숙종 때 환국 정쟁, 특히 허적 유악사건과 장희빈 사사 등과 함께 남인이 완전히 실각한다.

 

남인 처벌 문제로 서인은 분열한다. 강경파 노론’, 온건파 소론으로 나누어진다. 소론은 경종, 노론은 영조(연잉군)를 지지한다. 영조는 탕평책을 추구해 노론과 서론이 공존하기는 했지만, 노론이 조금 더 우세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노론은 사도세자 처리의 정당성 문제로 다시 벽파시파로 나뉘게 된다. 먼저 벽파가 세력을 얻지만 결국 시파의 소수 가문에 힘이 몰리면서 19세기 세도정치로 이어진다.

- 벽파 : 영조 때 장헌세자(莊獻世子) 즉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죽음을 당연한 처사 라고 하는 당파를 벽파 라고 하였다. 노론은 벽파에 속하였다. 대표인물로 심환지, 김종수, 서명선 등이 있다.

- 시파 : 사도세자의 죽음을 불행한 죽음으로 동정하는 당파이다. 곧 소론은 시파(時派)에 속하였다. 대표인물은 체제공, 김조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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