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직장인의노하우] 1911~1920년 한국사 사건 요약정리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준비를 위해 1911년부터 1920년까지의 핵심 흐름을 정리해보았어요! 이 시기는 '무단 통치기(1910년대)'에서 '문화 통치기(1920년대)'로 넘어가는 거대한 전환점이라 보시고 접근하면 좋을 것 같아요!! 1. 1910년대: 헌병 경찰의 '무단 통치'와 국권 회복 노력- 1910년대는 일제의 강압적인 통치 속에서 우리 민족이 국내외에서 실력을 양성하고 비밀리에 독립을 준비하던 시기입니다. -1911년: 105인 사건- 일제가 데라우치 총독 암살 모의 사건을 조작하여 신민회 회원들을 대거 체포한 사건입니다. 이로 인해 신민회가 해산되었지만, 독립운동의 중심은 만주 등 국외로 이동하게 됩니다. -1912년: 토지 조사 사업 실시- "기한 내에 신고하라"는 까다로운 조건으로 농민들의 땅을 빼앗아 동양척식주식회사 등에 넘긴 경제 침탈의 핵심입니다. 1912년 8월 토지조사령 공포로 토지조사사업을 촉진하고 신고 제도를 강화하였습니다. -1912년: 독립 의군부 조직- 임병찬이 고종의 밀명을 받아 조직한 복벽주의(왕정을 다시 세우려는 주의) 성격의 국내 비밀 결사입니다. -1915년: 대한 광복회 결성- 박상진 등이 대구에서 결성한 단체로, 독립 의군부와 달리 공화정을 지향하며 친일파 처단과 군자금 모금에 힘썼습니다. 2. 1919년: 우리 역사의 거대한 분수령, 3·1 운동과 임시 정부 1919년은 시험에서 단독 문제로 무조건 출제되는 해입니다. -1919년 2월: 2·8 독립 선언 (도쿄)- 일본 유학생들이 발표한 선언으로, 3·1 운동의 직접적인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1919년 3월: 3·1 운동 발발- 민족 자결주의의 영향과 고종의 인산일을 계기로 일어난 최대 규모의 민족 운동입니다. 일제는 제암리 학살 등으로 잔혹하게 진압했지만, 일제의 통치 방식을 '문화 통치'로 바꾸게 만들었습니다.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 (상하이)-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