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직장인의노하우] 1921~1930년 한국사 사건 요약정리
한능검(한국사능력검정시험) 1급을 노리는 수험생들에게 이 시기는 '실력 양성 운동 vs 사회주의 운동'의 대립과 통합 , 그리고 일제의 기만적인 문화 통치 를 파헤치는 아주 중요한 구간입니다. 그래서 한능검 기출 포인트만 쏙쏙 뽑아 1921년부터 1930년대 까지 정리해 드릴게요. 1. 1921년 ~ 1925년: 시련과 사회 운동의 확산 3·1 운동 이후 독립운동의 방향이 다양해지며, 국내에서는 실력을 키우자는 움직임과 사회주의 사상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1921년: 자유시 참변 간도 참변 이후 러시아 자유시로 이동했던 독립군들이 지휘권 문제로 소련 적군에 의해 무장 해제당하며 큰 희생을 치른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1923년: 밀립 대학 설립 운동 "한민족 1천만이 한 사람씩 1원씩"이라는 구호로 우리 손으로 대학을 세우려 했으나, 일제가 경성제국대학(1924)을 세우며 방해해 실패했습니다. 1923년: 관동 대지진과 한국인 학살 일본에서 발생한 대지진의 혼란 속에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수많은 한국인을 학살했습니다. 1925년: 치안 유지법 공포 시험 단골 문제! 일제가 사회주의자들을 탄압하기 위해 만든 법이지만, 사실상 모든 독립운동가를 잡아넣는 전천후 무기로 사용되었습니다. 2. 1926년 ~ 1929년: 민족 유일당 운동과 대규모 저항 이 시기의 핵심 키워드는 '좌우 합작'입니다. 이념을 넘어 하나로 뭉치기 시작합니다. 1926년: 6·10 만세 운동 순종의 인산일(장례식)을 기해 일어났습니다. 3·1 운동만큼 확산되지는 못했지만, 사회주의 계열과 민족주의 계열이 힘을 합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27년: 신간회 창립 별표 5개! 한능검 무조건 출제! 비타협적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이 결성한 최대 규모의 항일 단체 입니다. "기회주의(자치론자) 배격"이 핵심 강령입니다. 1929년: 광주 학생 항일 운동 한일 학생 간의 충돌로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