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직장인 한국사 요점정리_ 효종, 현종

 효종(재위: 1649 ~ 1659)

 

효종대왕은 인조와 인열왕후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이름은 이고 자는 정연이다. 1645년 효종대왕의 형인 소현세자가 갑작스럽게 죽자 같은 해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가 1649년 인조대왕이 돌아가자 조선의 제17대 왕으로 즉위하게 된다. 효종대왕은 재위 10년 동안 전란으로 피폐해진 민생을 복구하는데 온힘을 쏟았고, 군제를 개편하여 군사 훈련 강화에 힘썼으며 경제적으로는 대동법을 실시하였고, 상평통보를 널리 쓰이게 하는 등의 업적을 남겼다.

효종대왕은 대군시절에 형인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가 8년간 생활하면서 국제경험을 쌓았으며,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북벌을 계획하면서 군사력을 키우는데 역점을 두었다. 효정의 북벌의지는 송시열의 기해독대에서 잘 나타나는데, 효종은 정예화된 포병 10만명을 길러 기회가 있을 때 오랑캐들을 곧장 공격할 것이며, 이 일은 10년안에 추진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효종의 이러한 꿈은 효종이 41세 때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계획으로만 남게 된다.

16538, 네덜란드인인 하멜이 탄 동인도 회사 소속의 스페르베르(Sperwer)호가 폭풍우를 만나 제주도에 표류한다. 하멜 일행은 1653815일부터 166694일까지 1328일간 머물렀으며, 본국으로 돌아가 조선에서의 생활을 자세히 기록으로 남겼다. 조선의 지리·풍토·산물·군사·교육·무역 등을 폭넓게 기록한 하멜 표류기는 조선이라는 나라의 존재를 유럽에 소개한 최초의 문헌이다.

 

현종(재위: 1659~1674)

 

현종은 효종의 맏아들이고, 즉위하자마자 효종의 상에 인조 계비인 조대비가 어떤 상복을 입어야 하는가를 둘러싸고 서인과 남인 사이에 치열한 대립이 있었고, 어머니 인선왕후가 죽자 다시 대립했다(예송논쟁). 예론을 둘러싼 정쟁은 정권 쟁탈 수단이 되어 재위 기간 내내 붕당대립이 극심했다. 호남지방에 대동법을 실시했고 동활자 주조, 혼천의 제작, 지방관 상피법 제정 등의 업적이 있다. 효종 대에 계획한 북벌을 중단했지만 숭명 경향은 더 강해졌다.

 

*예송논쟁

1차 예송논쟁/기해예송(1659) : 효종이 세상을 떠나고 효종의 계모인 자의대비(장렬왕후)가 상복을 몇 년 입어야 하는 논쟁이 벌어짐

-서인(1) VS 남인(3년) : 국조오례의 어버지는 1년 동안 상복을 입는다는 서인의 주장과 국왕은 3년을 입는다는 남인이 대립하였지만 서인의 주장이 받아들여진다.

2차 예송논쟁/갑인예송(1674) : 효종의 아내이자 현종의 어머니인 인선왕후가 세상을 떠나고 자의대비가 상복을 몇 년 입어야 하냐로 2차 예송논쟁이 벌어짐

-서인(9개월) VS 남인(1) : 효종이 둘째 아들이니 인선왕후 또한 둘째 며느리로 9개월 상복을 입어야 한다는 서인과 어쨌든 효종이 왕권을 물려받았으니 상복은 1년 입어야 한다는 남인이 대립하였다. 이때는 남인의 승리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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