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직장인 한국사 요점정리_ 영조, 사도세자

조선직장인 한국사에서 영조와 사도세자에 대해 다뤄 보았다. 


 영조 (재위기간 : 17241776)

 

영조는 1699(숙종 25) 연잉군(延礽君)에 봉해졌으나 어머니의 출신이 미천했던 관계로, 노론 유력자인 김창집(金昌集)의 종질녀로서 숙종 후궁이던 영빈(寧嬪) 김씨의 양자노릇을 하였다. 이로 인해 숙종 말년 왕위계승문제가 표면화되었을 때, 이복형인 왕세자(후일의 경종)를 앞세우는 소론에 대립했던 노론의 지지와 보호를 받았다고 한다.

당파간의 갈등속에 왕이 된 영조는 정치적 조정력을 통해 어느 붕당이든 간에 온건하고 타협적인 인물을 등용하여 왕권을 강화하려 노력하였다.

영조는 우선 노론의 장기 집권에서 오는 폐단을 막고자 노론의 강경파를 몰아 내고 소론과 남인의 온건파를 고루 등용하는 탕평책을 펼쳐 나갔다. 영조는 탕평책을 널리 알리기 위해 한양의 성균관에 붕당간의 다툼을 금하는 탕평비를 세웠다(1742).

영조는 강화된 왕권을 바탕으로 민생 안정과 산업 진흥을 위한 여러 개혁을 단행하였다. 먼저 백성들의 군역 부담을 줄여 주기 위해 균역법(군포를 1년에 2필에서 1필로 줄여줌)을 시행하였고, 형벌제도를 완화하여 지나친 형벌 및 악형을 금지, 신문고를 부활하여 백성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게 하였다.

법전인 속대전, 의례서인 속오례의, 역대문물을 정리한 백과사전 동국문헌비고 등을 편찬하여 문물제도를 정비하였다.

서울 도성과 관련해서는 준천사를 설립(1760)하여 청계천을 준설(1760~1773)

 

사도세자

영조의 차남으로 어머니는 영조의 후궁 영빈 이씨이다. 정실 아내는 혜경궁 홍씨(헌경의황후)이며 그녀와의 사이에서 정조를 낳았다. 아버지와 오랜 갈등 끝에 만 27세의 젊은 나이로 7월의 한여름 땡볕 삼복더위에 쌀 담는 뒤주에 갇혀 8일 만에 굶어 죽은 것, 임오화변으로 유명하다. 영조는 늦은 나이(42)에 얻은 아들인 사도세자한테 기대가 지나쳐서 감내하기 힘들 정도의 질책과 정신적 학대를 가했다. 사도세자는 정신병을 얻어, 기행과 비행을 일삼다가 결국 비참하고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았다. 일부에서는 비운의 왕세자라고 하지만, 죽기 전 온갖 이유로 수십~백여건에 달하는 살인을 저질러, 빈말로도 무고한 피해자라고는 도저히 칭하기가 어렵다.


조선직장인 한국사 요점정리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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