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직장인의 한국사] 요점정리 (14)_ 조선건국

 조선역사를 다루기 전, 간단하게 조선건국 배경을 살펴보고 넘어가고자 한다.

조선 건국의 중심 세력은 새로운 사회를 추구하던 신진 사대부와, 외적의 침입을 막아 낸 무인들이었다.

 

[고려후기 시대 상황]

권문 세족들의 횡포와 문란한 경제 질서로 국가나 농민들의 생활이 어려웠다. 밖으로는 북으로부터 홍건적이 침입하고, 서남 해안 일대에서는 왜구의 노략질이 심하였다.

이 때 이성계는 무장으로서 남북으로부터 침략해 오는 외적을 토벌하는 데 큰 공을 세워, 국민들의 두터운 신망을 받고 있었다.

[위화도 회군]

이 무렵, 명은 한때 원이 차지하였던 철령 이북의 땅을 돌려 줄 것을 고려에 요구하였다. 그러나 당시 고려에서는 최영 등이 이를 거절하고, 명이 차지하고 있던 요동 지방까지 수복하고자 군사를 출동시켰다. 그러나 요동 공격을 반대하던 이성계는 출정 도중에 위화도에서 군사를 돌려 개경으로 돌아와 최영 등 반대파를 몰아 내고 정치적 실권을 잡았다.

권력을 잡은 이성계와 신진 사대부들은 새로이 과전법을 공포하여 그들의 경제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어서 신진 사대부들은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고 조선을 건국하였다(1392).

* 신진 사대부의 분화

- 온건개혁파 : 이색, 정몽주 중심, 고려왕조를 유지하면서 점진적 개혁을 주장

- 급진개혁파 : 정도준, 조준 중심, 새로운 왕조를 세우는 역성 혁명 주장

[조선건국의 의의]

고려가 문벌 귀족 사회, 불교 사상을 기반으로 한 사회였음에 비해, 조선은 양반 관료 사회, 유교 사상이 정치 및 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사회로 변화했다는 것이 의의라 할 수 있다.

[한양 천도]

새 왕조는 국호를 조선으로 정하였다. ‘조선이란 곧 고조선의 전통을 계승한다는 뜻이며, 단군에게서 민족의 독자성을 찾자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조선은 건국 후, 곧 도읍을 개경에서 한양으로 옮기고, 이를 한성부라 하였다. 한양은 한반도의 중앙에 위치하였을 뿐만 아니라, 도읍지로서의 자연 환경이 잘 갖추어져 있고 교통이 좋아 고려 시대에도 남경이라 하여 크게 중요시하였던 곳이다.

 

조선역사에 대해 알아보기 전 건국과정에서의 상황들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끝으로 유명했던 시조를 적어보려 한다.


如此亦如何(여차역여하)

이런들 또 어떠하며,

如彼亦如何(여피역여하)

저런들 또 어떠하리.

城隍堂後苑(성황당후원)

성황당의 뒷담이

頹圮亦何如(퇴비역하여)

무너진들 또 어떠하리

吾輩若此爲(오배약차위)

우리들도 이 같이 하여

不死亦何如(불사역하여)

죽지 않은들 어떠할까.

<하여가 / 태종 이방원>


此身死了死了(차신사료사료)

이 몸이 죽고 죽어

一百番更死了(일백번갱사료)

일백 번 고쳐죽어

白骨爲塵土 (백골위진토)

백골이 진토 되어

魂魄有也無 (혼백유야무)

넋이라도 있고 없고

向主一片丹心(향주일편단심)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寧有改理與之(영유개리여지)

가실 줄이 있으랴

<단심가 / 포은 정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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