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직장인의 한국사] 세종대왕 생애

세종(世宗, 1397~1450, 재위 1418~1450)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다. 이런 세종대왕의 업적과 생애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고 넘어가면 좋을 것 같다. 

141863일 조선의 제3대 왕인 태종은 세자 이제를 폐하고 셋째 아들인 충녕대군을 왕세자로 삼았다. 이때 태종은 [태종실록]을 통해 행동이 지극히 무도하여 종사를 이어받을 수 없다고 대소신료가 청하였기 때문에세자를 폐하고, 반면 충녕대군은 천성이 총명하고 민첩하고 자못 학문을 좋아하며, 치체(治體, 정치의 요체)를 알아서 매양 큰일에 헌의(獻議, 윗사람에게 의견을 아룀)하는 것이 진실로 합당하기에 왕세자로 삼는다며 그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두 달 뒤 태종은 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앉았다. 

그렇게 조선 제4대 왕에 오른 세종의 나이는 당시 스물 둘. 준비가 부족했던 세종은 모든 사안에 대해 상왕에게 물어보며 나라를 운영해 나갔다.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신을 최대한 낮추고 무섭게 공부하며 그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1422년 태종이 죽고 재위 4년 만에 전권을 행사하게 된 세종은 태종이 만들어놓은 정치적인 안정 속에서 자신의 학문적 역량을 마음껏 펼치기 시작했다. 학구적이었던 세종은 유학의 경전과 사서를 뒤지며 이상적인 제도를 연구하였고, 그것을 바탕으로 제도와 세부사항까지 규정해나갔다. 

세종은 정인지성삼문신숙주 등 당대의 수재들에게 연구를 시키며 집현전의 기능을 확대해 나갔다. 이렇게 해서 윤리, 농업, 지리, 측량, 수학, 약재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편찬하고, 관료, 조세, 재정, 형법, 군수, 교통 등에 대한 제도들을 새로 정비했다. 이때 정해진 규정들은 나중에 조선에서 시행된 모든 제도의 기본이 되었다. 세종은 과학기술과 예술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세종 초에 천문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서운관을 설치했으며, 혼천의, 앙부일구, 자격루를 만들어 백성들의 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 박연을 등용해 아악을 정리하고 맹사성을 통해 향악을 뒤받침하여 조선에 적합한 음악을 만들기도 했다. 

세종대왕의 큰 업적 중 하나는 바로 훈민정음일 것이다. 하지만 훈민정음 창제에 대해서는 전하는 기록이 거의 없다고 한다. 세종 최대의 업적이면서 우리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터 만들기 시작했는지, 구체적인 창제 동기가 무엇인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 전하지 않는다. 심지어 세종 단독 작품인지 집현전 학자들과의 공동 작업인지에 대해서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아마도 엄청난 반대를 예상한 세종이 비밀리에 작업한 일이었기에 그럴 것이라 추측된다. 

집권 후반기에 세종은 태종이 마련한 왕권 중심의 정치체제인 육조 직계제를 의정부 서사제로 개편하고 세자에게 서무를 결재토록 해, 왕에게 집중되었던 국사를 분산시켰다. 건강상의 이유이기도 했지만, 집현전을 통해 배출된 많은 유학자들을 바탕으로 자신의 유교적 이상을 실현시키고, 신권과 왕권이 조화된 유교적 왕도정치를 이끌어가려 했던 것 같다.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여러 가지 병에 시달리면서도 새로 편찬된 책들을 수십 권씩 직접 검토하던 세종은 1450254세로 세상을 떠났다. 정비 소헌왕후 심씨를 비롯해 여섯 명의 부인에게서 184녀를 두었다. 

이렇게 간략하게 세종대왕의 생애를 요약해 보았고, 다음 글에서부터는 한국사능력검정 또는 공무원 한국사 시험에 출제될 법한 내용들로 요약/정리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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