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직장인의 한국사] 요점정리 (5)_ 근초고왕, 광개토대왕, 장수왕, 진흥왕, 무령왕

한국사 배경지식이 될 만한 내용을 요약정리해 보았다.

보면 알겠지만 

삼국시대에 한번쯤은 이름을 들었을법 한 왕들에 대한 내용이다.

가볍게 독서하듯이 읽고 넘어가면 좋을 것 같다.

한국사능력검정은 큰 흐름에서 왕들의 업적을 이해하고 넘어가면 될 것 같고,

너무 세부적으로 기억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근초고왕(재위 346~375)

 

백제의 제13대 왕으로 백제 11대 비류왕(比流王, 재위 304~344)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비류왕이 죽은 뒤에 10대 분서왕(汾西王, 재위 298~304)의 맏아들인 계왕(契王, 재위 344~346)이 왕위를 계승하였으나, 계왕이 왕위에 오른 지 2년 만에 죽자 비류왕의 아들인 근초고왕이 왕위에 올랐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근초고왕은 368(근초고왕 23) 신라에 좋은 말 두 필과 함께 사신을 보내 우호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가을에 고구려의 고국원왕(故國原王, 재위 331~371)이 직접 2만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치양(雉壤, 지금의 황해도 배천)을 침공해오자, 태자에게 병력을 이끌고 공격케 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371(근초고왕 26) 고구려가 다시 침공해오자 패하(浿河) 인근에 매복하였다가 기습하여 고구려군을 물리쳤다. 그해 겨울에 근초고왕은 태자와 함께 3만의 병사들을 이끌고 고구려의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전사시켰다.

그 뒤 근초고왕은 도읍을 한산(漢山)으로 옮겼으며, 그의 재위기에 백제는 오늘날의 경기·충청·전라도의 전부와 강원도·황해도의 일부를 차지하는 강력한 고대국가로 성장했다. 삼국사기에는 동명왕의 아들 온조가 위례성으로 도읍을 옮겨 왕이라고 일컬은 지 389년이 지나서 근초고왕 때 고구려의 남평양을 빼앗아 도읍을 한성(漢城)으로 옮겨 105년을 지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한강에 접한 한산으로 도읍을 옮긴 근초고왕은 372년 중국의 동진(東晋, 317420)에 사신을 보내 외교관계를 수립했으며, 박사(博士) 고흥에게 백제의 사적을 정리하여 서기(書記)를 편찬하게 했다.

375(근초고왕 30) 가을에 고구려가 수곡성(水谷城)을 공격해오자 근초고왕은 군대를 보내 막게 하였으나 결국 성은 함락되었다. 근초고왕은 다시 군대를 동원하여 고구려에 보복하려 했으나 흉년이 들어 실행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해 겨울에 사망하였고, 그의 아들인 근구수왕(近仇首王)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광개토대왕/영락 (재위 391~412)


- 신라에 침입한 왜 격퇴 / 신라에 대한 영향력 확대(호우명 그릇)

- 동부여 복속

- 후연격파 및 요동차지

- 백제공격 -> 한강 이북 차지

- 거란 정벌 -> 만주 차지


장수왕/거련 (재위 413~491) :


고구려 제 20대 왕(413) -> 광개토대왕비 건립(414) -> 남조 송에 사신 파견(424) -> 평양천도(427) -> 북연왕, 고구려에 투항(436) -> 북위와 외교(462) -> 신라 실직주성(삼척) 공격(468) -> 백제한성 함락, 개로왕을 죽임(475) -> 남제와 외교, 중원고구려비 건립(480) -> 신라 7성 함락(481) -> 서거(491)

- 광개토대왕릉비 : 국내성에 건립, 광개토대왕의 생애, 정복 역사 등 기록

- 장수왕은 중국의 남북조 사이에 균형 외교 전개

- 백제공격 -> 개로왕 전사(475) -> 한성점령, 한강유역 확보 -> 한반도 중부까지 영토확장 -> 충주 고구려비 건립(한반도 유일한 고구려 비석, 신라의 왕을 동이 매금으로 표현) 


진흥왕(재위 540~576)

 

551년 신라의 진흥왕은 백제의 성왕과 힘을 합쳐 고구려 정벌에 나섰다. 4~5세기 광개토대왕과 장수왕대에 전성기를 지낸 고구려는 이 무렵 내부의 권력투쟁과 북방 돌궐의 침입 등으로 내우외환을 겪고 있었다. 백제는 고구려의 도읍인 평양성을 공격하여 승리함으로써 장수왕에게 빼앗겼던 한강 유역의 6군을 회복했고, 신라는 한강 상류의 10군을 점령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고구려에 맞서기 위한 백제와 신라의 동맹, 나제동맹이 성공적으로 유지되는 듯 보였다. 그런데 2년 뒤 진흥왕은 가야의 왕자 출신인 김무력을 시켜 백제군을 급습했다. 백제가 차지했던 한강 하류를 빼앗은 진흥왕은 여기에 새로운 주를 설치했다. 100여 년이 넘도록 유지된 나제동맹을 깨트리고 공격적으로 한강 유역을 차지한 진흥왕의 나이는 당시 스무 살에 불과했다. 

성왕은 귀족들의 반대에도 신라 공격을 결정하고 총사령관으로 태자 여창을 임명했다. 여창은 백제·가야·왜의 연합군을 이끌고 관산성으로 쳐들어갔다. 관산성은 신라 땅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며, 또 한강 하류 지역에 머무는 신라군의 보급로를 차단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554년 신라와 백제의 운명을 건 관산성 전투는 우리나라 고대 국가 간의 전쟁에서 가장 처절한 싸움으로 기억된다. 치열한 전투 결과 관산성은 백제군에게 함락되었고, 여창은 구천이라는 곳에 본진을 설치하고 전열을 정비하고 있었다. 관산성 전투의 승리를 보고받은 성왕은 태자를 격려하기 위해 구천으로 향했다. 

그런데 너무 방심했던 것일까. 성왕은 친위군대 50명만 이끌고 적진으로 달려가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정보를 입수한 진흥왕은 성왕을 급습해 목을 베고, 그 여세를 몰아 관산성을 되찾았다. 이 전투에서 백제는 왕을 비롯해 좌평 4인과 29,600명에 이르는 군사가 모조리 죽음을 당했다. [삼국사기]한 필의 말도 돌아간 것이 없다.”고 기록했을 만큼 비참한 최후였다. 

진흥왕이 했던 업적으로는 진흥왕 순수비, 한강 이남 지역을 차지, 팔관회를 처음 열었음, 황룡사를 지어 불교 진흥 공헌, 화랑제도 창시, 국사를 편찬(거칠부) 등이 있다.


골품제도(신라시대 신분제도)

 

이 제도는 골품(骨品), 즉 개인의 혈통(血統)의 높고 낮음에 따라 정치적인 출세는 물론, 혼인, 가옥의 규모, 의복의 빛깔, 우마차(牛馬車)의 장식에 이르기까지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여러 가지 특권과 제약이 가해지는 제도로 신라의 국가형성기에 만들어지기 시작해 6세기 초에는 이미 법제화되었다. 


무령왕(재위 501523)

 

무령왕은 삼국시대 백제의 제25대 왕이다.위사좌평 백가가 보낸 자객에 의해 동성왕이 시해되자 그를 이어 즉위했다. 북방정책에 몰두하여 고구려·말갈 등의 침략을 무찌르고 대비책을 강화했으며, 중국 남조의 양과 관계를 강화하는 외교정책을 폈다. 지배귀족들의 전횡을 막고자 좌평제를 폐지하고 22부사제로 행정체제를 바꾸었고, 백성들의 진휼에 힘쓰는 한편 수리시설 정비·확충과 호적체계 정비로 안정적 국가 운영의 토대를 마련했다. 한강 유역을 고구려에 빼앗긴 후 혼란에 빠진 백제를 안정시킨 왕으로 평가된다.

 

무령왕릉

 

무령왕릉은 1971년 송산리 고분군의 배수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덕분에 도굴의 피해 없이 완전한 형태로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무령왕릉 발굴조사에서 가장 큰 성과는 무덤의 주인공이 밝혀졌다는 점이다. 내부에서 발견된 지석을 통해 무령왕은 5235월에 사망해 5258월 무덤에 안치되었고, 왕비는 52611월에 사망하여 5292월에 안치되었음이 밝혀졌다. 이로써 왕릉의 묘제와 출토유물에 절대 편년이 가능해졌고, 무령왕릉은 이후 다른 유적과 유물의 연대 추정에 기준이 되었다. 그리고 현재까지 무덤의 주인공이 확인된 유일한 고대 왕릉으로서 그 가치를 더하고 있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은 총 4,600여 점에 이른다. 또한 무령왕릉은 당시 백제 문화의 국제성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벽돌무덤이라는 형식 자체가 당시 중국 남조에서 유행하던 묘제였다. 무덤을 수호하는 진묘수(鎭墓獸) 역할을 했던 석수와 중국제 청자육이호와 청자등잔의 존재도 백제와 남조의 활발한 교류를 보여준다. 그리고 일본산 금송(金松)으로 만든 목관을 통해 왜와의 밀접한 관계 역시 짐작할 수 있다. 최근에는 무령왕릉 출토 유리구슬에 사용된 납이 태국에서 생산되었음이 밝혀졌다. 또한 왕비 관장식의 꽃무늬와 인도 산치탑 난간 무늬와의 유사성이 지적되기도 했다. 이처럼 백제는 동아시아를 넘어 동남아시아·인도와 교류하는 국제성을 띠고 있었고, 더불어 선진 문화를 수용하여 백제화하는 주체성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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