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직장인의 한국사] 요점정리 (3)

한국사 시험준비에 이어 

한국사 문제를 풀면서 요점정리를 해보려 하고 있다. 

오로지! 출제중심의 정리이다. 



- 율령의 반포 -

 

백제 고이왕 : 재위 기간은 234~286년으로 좌평제와 관등제의 설치, 공복의 제정, 율령의 반포 등을 통해 고대 국가로서 백제의 국가체제를 확립했다. 대외적으로는 마한의 영도세력으로 성장하였으며, ()의 군현(郡縣)과도 대등하게 싸웠다.

 

신라 법흥왕 : 재위 기간은 514~540년이며, 지증왕의 아들로 중앙 집권적인 고대 국가체제를 완비한 왕이다. 먼저 병부를 설치, 군사권을 장악하여 왕권을 강화한 후 율령을 반포하고 백관의 공복을 제정함으로써 왕을 정점으로 하는 국가체제를 완비했다. 상대등을 설치하여 귀족회의를 주관하게 했고, 가야를 합병하여 영토를 확장한 후에는 독자적인 연호를 최초로 사용했다.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를 국가의 종교로 공인하고 국가 형성의 이념적 지주로 활용했다. 말년에는 승려가 되어 법호를 법공이라 했다.

 

고구려 소수림왕 : 고구려 제17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371~384년이며, 부왕인 고국원왕이 백제군을 맞아 싸우다 전사하자 뒤를 이어 즉위했다. 부왕의 팽창정책 실패로 인한 사회의 동요를 극복하기 위해 일련의 체제 정비에 나섰다. 불교를 수용하고 보급하기 위해 전진의 승려 순도와 아도를 맞아들였고, 유교 교육기관인 태학을 설립해 유교이념의 확대를 꾀했다. 국가 통치의 기본법인 율령을 반포하여 왕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적 국가체제 정비에 나섰다. 이러한 일련의 정책은 4세기말5세기 고구려의 전성기를 가져오는 기틀이 되었다.

 

- 고구려 -

고구려는 연가라는 독자적인 연호 사용

 

동천왕(3C)

- (위나라 관구검 침입) (환도산성·국내성 함락)

- 서안평 공격

미천왕(4C)

- 서안평 점령(311)

고국원왕:

- 백제 근초고왕 침입 및 평양성 전투 중 사망(371)

소수림왕(4C)

- 전진과 수교 불교,태학,율령

광개토대왕(5C)

- 동예 복속, (후연)격파 -> (요동)진출

- 백 공격 (관미성 전투,391) -> 한강 이북 진출

- 신 내물왕에게 군대 지원 (415)

전기 가야 연맹 해체

장수왕 (5C)

- 남하정책 & 평양천도(427)

- 백제 한성 함락 (서울 아차산성)

- 백제 (개로왕=부여경 사망)(475)

※ 영류왕 (7C)

고구려 말 (631647) 부여성에서 발해만 비사성에 이르는 국경을 방어하기 위해 천리장성 축조, 이때 영류왕의 지시로 연개소문이 감독함

「<<막리지 비도대전>>은 당 태종을 향해 위협적으로 칼을 날리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 연개소문을 보여주었다. 연개소문은 영류왕을 시해하고 대막리지가 되어 권력을 장악한 뒤, 당의 침략을 격퇴한다. <<막리지 비도대전>> 그림을 통해 당시 중국인들이 그를 어떤 존재로 인식하는지 알 수 있다.


고구려에는 왕이 있고, 벼슬로는 상가, 대로, 패자, 고추가, 주부, 우태, , 사자, 조의, 신인이 있으며, 신분의 높고 낮음에 따라 각각 등급을 두었다.... 10월에 제천행사는 국중대회로 이름하여 동맹이라 한다.-“삼국지동이전 -

 

당은 668년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고구려를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고구려의 영토를 9도독부, 42, 100현으로 나누고, 옛 고구려의 수도인 평양성에는 안동도호부를 설치

 

- 백제 -

 

1. 백제 근초고왕 시절 백제학자 고흥은 역사서인 서기를 편찬하였다.

2. 22담로 : 백제가 지방에 설치했던 행정 단위.

3. 551년 백제 성왕시절 진흥왕과의 나제동맹으로 한강 유역을 회복

2. 660년경 백제의 사비성은 나당 연합군에 의해 함락

3. 백강 전투는 6638월에 신라의 백강(현재의 금강 하구 부근)에서 벌어진 백제·왜의 연합군과 당·신라의 연합군이 벌인 전투로 당·신라 연합군의 승리로 백제부흥운동은 실패한다.

 

복신은 일찍이 군사를 거느렸는데, 이때 승려 도침과 함께 주류성에 근거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왜국에 있던 왕자 부여풍을 맞이하여 왕으로 세웠다.-660년 백제의 부흥운동-

 

- 신라 -

 

1. 법흥왕때 금관가야는 신라에 복속

2. 왜의 침입 시, 광개토대왕이 신라에 군대를 파견하여 왜를 격퇴

3. 매소성 전투 : 나당전쟁 중인 675년 음력 929일 매소성(지금의 연천군)에서 벌어진 신라와 당나라의 대결. 신라군이 당군을 물리친 전투다.

 

642(선덕여왕 11) 대야성(大耶城)을 둘러싸고 신라와 백제 사이에 벌어진 대야성전투(大耶城戰鬪)에서 신라가 패하여 도독인 품석의 아내도 죽었는데, 바로 춘추의 딸이었다. 김춘추가 말하기를, 신이 고구려에 사신으로 가서 군사를 청하여 백제에 원수를 갚고자 합니다. 라고 하자 왕이 허락하였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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