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직장인 한국사 주요사건 요약 (1919년)

 [1919년]


1월 21일 대한제국 고종 황제가 덕수궁에서 승하하였다. 승하 직후 일본인에 대한 독살이라는 유언이 퍼졌다.
2월 8일 일본 도쿄에서 유학생 600여명이 2·8 독립 선언 발표.
 * 2·8 독립 선언(二·八獨立宣言)은 1919년 2월 8일 일본 도쿄에서 조선 유학생들이 조선의 독립을 선언한 사건
2월 16일 재미대한인국민회가 윌슨 미국 대통령에게 한국독립청원서 제출
2월 18일 조선체육회 발족
2월 27일 보성사에서 독립선언서를 인쇄
 * 보성사(普成社)는 이용익이 1906년 학교 교재 출판을 위해 서울에 세운 인쇄소이다.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이 태화관에서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고, 동시에 전국 각지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났다.
 - 민족대표인 이종일은 조선독립신문(朝鮮獨立新聞)을 1919년 3월 1일에 보성사에서 몰래 발간
3월 3일 고종 황제의 국장이 거행
4월 1일 유관순이 천안 아우내장터에서 만세 운동을 지휘하다 체포되
4월 10일 민족운동지도자 29인이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을 개원하고, 내각을 조직함
4월 15일 남만주(南滿洲) 안둥 성 류허 현에서 조맹선(趙孟善)·백삼규(白三奎)·조병준(趙秉準) 등이 모여 대한독립단 결성, 192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광복군 사령부에 편입됨
5월 3일 만주의 신흥학교를 신흥무관학교로 개편
5월 12일 김규식이 파리평화회의에 참석해 독립청원서를 제출
7월 10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국내 연락을 담당하는 연통제 실시를 공포
*연통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내와의 비밀연락망 조직임
8월 20일 헌병 경찰제 폐지
8월 25일 일제강점기: 이승만, 미국 워싱턴 D.C.에 대한민국임시정부 구미외교위원부 설립
8월 30일 일제강점기: 이동휘,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에 취임
9월 2일 일제강점기: 강우규, 서울역에서 제3대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에게 폭탄을 투척했으나 암살 실패
9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통합 출범하였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대한민국 임시 헌법 공포
10월 5일 김성수가 경성방직주식회사를 설립
10월 23일 대한정의단 임시군정부가 대한정의군정부로 이름을 바꿈
11월 9일 만주 길림에서 김원봉을 단장으로 하는 의열단 결성
12월 정의단 군정부가 상하이 임시정부의 북로군정서로 개편
 *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는 1919년 동간도에서 만든 무장독립운동 단체로 대종교 계통에서 비롯되었다. 1919년 만주 지린성(吉林省)에서 서일(徐一), 김좌진을 중심으로 조직됨 


[3.1.운동]
3.1 운동(三一運動)은 1919년 3월 1일부터 수 개월에 걸쳐 한반도 전역과 세계 각지의 한인 밀집 지역에서 시민 다수가 자발적으로 봉기하여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일본 제국의 한반도 강점에 대하여 저항권을 행사한 비폭력 시민 불복종 운동(civil disobedience)이자 한민족 최대 규모의 독립운동이다. '3·1 독립선언', '3·1 혁명', '3·1 독립만세운동', '기미 독립운동' 등으로 칭하기도 한다. 2019년 3월 1일에 100주년을 맞이하였다.
참가자들은 '조선 독립 만세'라는 구호를 앞세워 일본 제국의 무단통치(武斷統治)를 거부하고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였으며 이는 민간과 지식인의 반향을 일으켜 대규모의 전국적 시위로 발전하였다. 시위가 끝난 뒤에도 그 열기는 꺼지지 않고 각종 후원회 및 시민단체가 결성되었고 민족 교육기관, 조선여성동우회와 근우회 등의 여성 독립운동 단체, 의열단 등의 무장 레지스탕스, 독립군이 탄생했으며 종래에는 현대 한국의 모체(母體)인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낳은 운동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계기이고 헌법에도 계승하고 있음을 명시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3·1 운동에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대한민국 정부에서 사용한 대한민국 연호는 3·1 운동이 일어난 1919년을 원년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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