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직장인 한국사 주요사건 요약 (1907)

근현대사 (1907년)


ㅇ 1월2일 평양 대부흥 운동

- 1903년 원산 대부흥을 시작으로 평양, 개성, 서울, 목포 등지로 확산되었고 1907년 1월 에 평양 대부흥으로 발전


ㅇ 2월21일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 시작

-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은 일본 제국이 대한제국에 제공한 차관 1,300만엔을 국민들이 상환을 주도한 운동이다. 1907년 2월 21일 경상북도 대구에서 서상돈, 김광제, 윤필오 등에 의해 처음 시작되어 대중들의 크나큰 호응을 바탕으로 전국으로 발빠르게 번져나감

- 통감부는 친일단체 일진회를 동원하여 "누가 모금한 돈을 횡령한다더라"는 소문을 퍼트렸고, 당황한 국채보상기성회는 고소를 했고, 일본은 기다렸다는 듯이 국채보상운동의 핵심 인물이었던 양기탁을 횡령 혐의로 구속했다. 물론 물증이 없어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했지만, 국채보상운동에 큰 타격이 되었고, 국채보상운동의 열기는 빠르게 식었다. 


ㅇ 6월24일 헤이그 특사 파견

- 1907년에 대한제국 황제 고종이 제2차 한일협약의 부당함과 일본 제국의 침략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비밀리에 네덜란드 헤이그시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보낸 3명의 특사들을 가리킨다. 이상설, 이준, 이위종. 여기에 일제의 특사인 척, 연막 작전을 펴던 미국인 호머 헐버트까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합세


ㅇ 7월20일 순종 즉위

- 1907년, 고종이 헤이그 밀사를 보낸 것이 일본에게 발각되었고 이에 분노한 일본은 이를 빌미로 고종에게 퇴위 강요. 결국 고종이 황태자에게 국정의 섭정(攝政)을 맡긴다는 조칙을 내렸는데, 일본은 이를 이용하여 순종의 즉위식을 밀어붙이고 강행하였다. 하지만 말이 황제였을 뿐 모든 실권은 일본을 등에 업은 이완용과 송병준에게 있었고, 이완용과 송병준 이 두 사람의 주도하에 일본에 대한제국의 국권(國權)을 넘겨주는 일이 착착 진행됨


ㅇ 8월1일 대한제국군 강제 해산


ㅇ 8월3일 광무 연호를 융희로 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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