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사태의 중심 _ 하나회

전두환, 노태우(전두환과 대구공립공업중학교 동기), 김복동(노태우의 경북고 1년 후배), 최성택, 박병하가 처음부터 의기투합하여 만든 것이 '오인회'라고 한다. 이후, 오인회(1951년) → 오성회(1952년) → 칠성회(1962년) → 텐 멤버(1963년) → 일심회(1963년) → 하나회(1963년) 순으로 확대 발전해 나가 비밀 사조직이 완성되었다. 

하나회는 전두환과 노태우가 중심이 되어 그들의 육군사관학교 11기(51년 입학, 55년 임관) 동기들과 후배들을 구성원으로 하여 비밀리에 결성되었고, 친목회로 출발한 이 조직은 제3공화국 시기, 박정희 대통령의 은밀한 후원 속에 성장해 나갔다.

박정희 대통령은 하나회 출신들을 위주로 진급을 시켜 주었고, 전두환이 준장에 진급할 땐, 최고급 세단까지 하사했다. 육사 11기 준장 1차 진급자 4명이 전원 하나회였고, 2차 진급자 4명 중 2명이 하나회였다. 1~2차 장성 진급자 8명 중에 6명이 하나회였을 정도였다. 이처럼 주요 요직은 하나회가 접수하는 푸시를 받았고 제2공화국 시절부터 사실상 최고 권력 집회로 군림하며 요직을 회원끼리 세습해나가는 독차지까지 자행하며 군대뿐만 아니라 정계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뻗어나갔다고 한다.

1979년 10.26 사건 이후, 정국 혼란을 틈타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켜 전두환이 정권을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하나회가 12·12 군사 반란을 일으킨 이듬해인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이후 전두환이 정부와 국회를 장악,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이렇듯 대통령까지 배출해내고 제5공화국으로 정치 체계를 뒤집었을 정도로 대한민국 현대사에 있어 막강한 존재감을 과시한 조직이 하나회다.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제6공화국이 출범한 이후에도 하나회의 2인자인 노태우가 김영삼과 김대중의 내분 속에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 성공한다. 이렇게 되어 하나회는 민주화 이후 노태우 정부까지도 정권의 주요 세력으로 존속했었다.

노태우 정부 출범 이후에는 전두환과 노태우의 내분으로 그 세력이 약화된다. 이후 3당 합당으로 철저히 속내를 감춘 채 하나회 숙청에 칼을 갈던 김영삼이 노태우의 뒤를 이어 대통령 자리에 올라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의 주도로 전격 숙청되어 완전하게 해체되었다.

현 대한민국 국군의 온갖 병폐와 출신 차별, 비리를 넘어서 대한민국 사회 내의 여러 병폐와 군대문화를 뿌리내리게 한 최악의 사익 단체 중 하나로 평가된다.


하나회의 역사를 보면 51년 부터 93년까지 유지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여전히 지금도 또 다른 하나회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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