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직장인 한국사 주요사건 요약 (1886 ~ 1894)

  조선 (1886 년 ~ 1894 년 )   [1886 년 ] 한성주보 창간 (1/25) * 한국 최초의 주간 신문 ( 국한문 혼용 ). 《 한성순보 》 의 후신이다 . 이화학당 설립 (5/31) * 미국인 선교사 메리 스크랜튼 부인이 한국 최초의 여학교 인 이화학당을 설립 ( 現 이화여고 ,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 이화여대 ) 조불수호통상조약 (6/4) * 한국에서 가톨릭 신앙과 선교의 자유가 허용 육영공원 설립 (9/23) * 조선 후기 한 국 최초의 근대식 공립교육기관 으로 근대적 신교육으로 발전하는 교량적 역할을 하였으나 , 영어교육을 지나치게 강조 하고 고급 양반 자제만을 대상 으로 삼는 등 국민 대중 교육에는 한계가 있었음 [1887 년 ] 경북궁 내 전등 설치 (3/6) [1889 년 ] 함경도와 황해도에 방곡령 선포 (8 월 ) * 조선 말기에 시행된 식량 정책 . 특정 지역의 식량 부족 사태가 일어났을 경우 원활한 식량 공급을 위해서 타 지역으로 식량을 반출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명령을 말하는 것으로 대표적인 조선 후기 방곡령으로 1889 년 ( 고종 26 년 ) 에 함경 감사였던 조병식이 일본에 곡물 수출을 금지한 방곡령 이다 . * 이때 일본은 한일 수호 조약에 위배 된다면서 일본은 조선 정부에 조병식의 처벌 및 일본인 상인들이 입은 손해 배상을 요구했고 조정은 이러한 일본의 요구에 굴복하여 조병식을 강원도 관찰사로 전출시키는 한편 함경도 지방의 방곡령을 해제 하게 됨 [1893 년 ] 지석영 서울 교동에서 유아에게 우두 실시 (1/13) [1894 년 ] 동학농민운동 (1894 년 ) ( 원인 ) 전라도 고부 군수 조병갑의 부패 ・ 수탈 에 대한 반발 ( 과정 ) 1) 1894 년 1 월 고부민란 -> 2) 1894 년 5 월 청일 양국의 군대 파병 -> 3) 1894 년 6 월 일본군 경복궁 장악 -> 4) 1894 년 9 월 우금치 전투 패배 후 전봉준 처형 * 1893 년 보...

조선직장인 한국사 주요사건 요약 (1883 ~ 1885)

  조선 (1883 년 ~ 1885 년 )   [1883 년 ] 일본에 대한 인천항 개항 (1/1)  * 부산항 개항 (1876), 원산항 개항 (1880) 태극기 조선의 국기로 지정 (3/6) 보빙사 미국에 파견 (7/15) - 조선이 최초로 서양 ( 미국 ) 국가에 파견한 외교 사절단 조일통상장정 체결 (7/25) - 조선과 일본 사이에 조인된 통상관계 규정 조약  * 관세권이 일정부분 회복되지만 , 일본에 대해 최혜국 대우를 인정해 주게됨 최초의 근대적 신문 한성순보 발간 (10/31) - 통리아문 박문국에서 발행한 월 3 회 발간된 순한문 관보 원산학사 학교 설립 승인 - 민간에 의해서 함남 원산에 세워진 한국 최초의 근대적 교육기관 당오전 발행 - 1883 년 ( 고종 20) 2 월에 주조되어 1894 년 7 월까지 유통되었던 화폐   [1884 년 ] 우정총국 설립 (4/22) - 조선말기 우체 업무를 담당하던 관청으로 갑신정변 이후 없앴다 . 갑신정변 발생 (12/4) - ( 정의 ) 급진개화파가 청나라로부터의 독립과 조선의 개화를 목표로 일으킨 정변 - ( 요약 ) 김옥균 , 박영효 , 홍영식 , 서광범 , 서재필 등 급진개화파가 청나라로부터의 독립과 조선의 개화를 목표로 일으킨 정변이었으나 , 청나라의 군사 개입과 민중의 지지를 얻지 못함으로써 3 일만에 실패함 - ( 결과 ) 조선의 정변을 진압한 청의 내정 간섭은 더욱 심화되며 일본과는 공사관 신축비와 배상금 지불을 내용으로 한성조약 (1885) 체결   * 청과 일본 제국간의 텐진조약 체결 (1885)   [1885 년 ] 한성조약 체결 (1/9) - 한성부에서 김홍집을 비롯한 조선 측 협상단과 이노우에 가오루를 비롯한 일본 제국 측 협상단이 갑신정변의 사후 처리 및 보상에 관해 논의하고 체결한 조약 영국 거문도 점령 (4/15) - 영국이 러시아 제국의 남하를 견제하고자 거문도를 점령함 ...

조선직장인 한국사 주요사건 요약 (1877~1882)

  조선 (1877 년 ~ 1882 년 )   [1877 년 ] 태정관지령 ( 일본 ) - 1877 년 3 월 당시 일본의 최고 국가기관인 태정관 ( 太政官 ) 이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의 영토가 아니라고 확인한 공식 문서 .   [1880 년 ] 통리기무아문 - 조선에서 본격적인 개화의 흐름은 1880 년대부터 시작되었는데 , 이에 맞추어 변화를 이끌고 근대적 내정 사무를 관장할 기구로 통리기무아문이 설치 . - 군국기무 ( 軍國機務 ) 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 여기서 군국기무란 국가의 군사 업무와 일반 국정을 뜻한다 . 즉 통리기무아문은 당시 조선의 정치 전반에 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 실제 통리기무아문은 대신 ( 大臣 ) 중에서 총리 ( 總理 ) 를 마련하고 통제하거나 정무 보는 것을 의정부와 같게 할 정도로 막강한 권위를 자랑함 . 제 2 차 수신사 ( 김홍집 ) 일본 파견 <1876 년에 파견된 1 차 수신사 김기수 등 75 명은 일본의 정치ㆍ군사ㆍ교육ㆍ문화 시설들을 시찰하였다 . 김기수는 기행문 < 일동기유 > 에서 일본의 문물과 서양의 기술ㆍ문화 수용을 주장하였다 . 1880 년에 이루어진 2 차 수신사 파견에서는 김홍집 등이 일본의 군사ㆍ교육ㆍ산업 시설들을 시찰하였다 . 이 시기에 황쭌센의 < 조선책략 > 을 가져와 신문화 수입과 외교 정책을 건의하였다 >   [1881 년 ] 조사시찰단 / 신사유람단 - 1881 년 ( 고종 18 년 ) 일본의 시찰단 파견 권유 ( 내지는 요구 ) 는 계속 있어왔지만 , 강화도 조약 (1876) 과 통리기무아문 (1880) 의 설치 , 조선책략의 반향과 영남 만인소사건등으로 서구식 개혁에 대한 조선 국내 여론이 나빠지자 조선 정부는 1881 년이 되어서야 비밀리에 조사시찰단을 파견 - 개화파로 구성된 박정양을 포함한 60 명이 파견되었으며 , 비밀리에 파견되었기에 암행어사의 신분으로서 부산을 통해 뱃길로 도쿄로 감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