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직장인의노하우] 1945~1950년대 중반까지 한국사 사건 요약정리
1. 1945년 ~ 1947년: 해방과 좌우의 갈등
해방의 기쁨도 잠시, 어떤 나라를 세울 것인가를 두고 국내외 세력이 치열하게 대립한 시기입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여운형 중심의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건준) 결성.
1945년 12월: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
신탁 통치 결정 소식에 국내가 찬탁(사회주의 계열) vs 반탁(민족주의 계열)으로 나뉘어 극렬히 대립했습니다.
1946년 3월: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
정부 수립 방안을 논의했으나 결렬되었습니다.
1946년 6월: 이승만의 정읍 발언
"남측만이라도 단독 정부를 세우자"는 폭탄 발언이 나왔습니다.
1946년 7월: 좌우 합작 운동
분단을 막기 위해 여운형과 김규식이 '좌우 합작 7원칙'을 발표하며 노력했습니다.
1947년: 한반도 문제 UN 이관
미·소 공동 위원회가 최종 결렬되자 한반도 문제가 UN으로 넘어갔습니다.
2. 1948년 ~ 1949년: 정부 수립과 시련
한반도 이남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의 아픔이 담긴 시기입니다.
1948년 4월 3일: 제주 4·3 사건
단독 선거에 반대하는 무장 봉기와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양민이 희생되었습니다.
1948년 4월: 남북 협상
김구와 김규식이 평양으로 건너가 김일성을 만났으나,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김구의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함' 사료 주의!)
1948년 5월 10일: 5·10 총선거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적 보통 선거입니다. 제주도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실시되었습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선포
제헌 국회가 구성되고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1949년: 반민특위 활동 & 농지 개혁법
친일파 청산을 위한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가 활동했으나 이승만 정부의 방해로 해체되었습니다. 반면, '유상 매수 유상 분배' 방식의 농지 개혁은 성공적으로 평가받습니다.
3. 1950년 ~ 1953년: 6·25 전쟁과 휴전
민족 최대의 비극인 전쟁의 전개 과정을 순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 남침
1950년 9월 15일: 인천 상륙 작전
전세 역전의 결정적 계기입니다. 이후 압록강까지 진격했습니다.
1951년 1월 4일: 1·4 후퇴
중국군의 개입으로 서울을 다시 내주고 후퇴했습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 체결
현재의 휴전선이 확정되었습니다.
1953년 10월: 한·미 상호 방위 조약 체결
전쟁 직후 미국의 군사적 지원을 약속받은 조약입니다.
4. 1954년 ~ 1950년대 중반: 이승만 정부의 집권 연장
1954년: 사사오입 개헌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 제한을 없애려는 억지 개헌이었습니다. (수학적 반올림 논리를 적용한 사건)
1950년대 경제: 3백 산업
미국의 원조 물자인 밀가루, 설탕, 면화(흰색 3가지)를 가공하는 산업이 발달했습니다.
**정읍 발언(46.6) → 좌우 합작 운동(46.7) → UN 이관(47) → 제주 4·3(48.4) → 5·10 총선(48.5) → 정부 수립(4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