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직장인의노하우_광복절 (8.15)

 [8·15광복]

8·15광복은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통치로부터 벗어나 독립을 되찾은 사건이다.

국권이 강탈된 후 민족독립운동이 가열차게 진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국가의 건설을 위한 모색과 진전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광복은 연합국 측의 승리에 힘입은 바가 컸고 냉전질서가 심화되면서

남과 북에 체재를 달리하는 단독 정부가 수립되어 민족이 분열되는 결과를 피할 수 없었다.

군국주의적 일제의 침탈로 국가 재건은 거의 폐허에서 시작되었고,

정치·문화적 침탈도 심각하여 일제 잔재 청산 노력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을 정도이다.


[8·15광복 당시 상황]

1945년 8월 15일 오전 12시 정각. 일본 천황의 무조건 항복 라디오 방송이 흘러 나왔다.

이 당시 일본 천황의 항복에 관한 방송은 황족어로 발표되었고,

라디오의 음질 불량으로 정확히 전달된 것은 아니었다고 하니

우리가 생각하는 항복 직후 모두가 나와 만세를 부른 것은 아닌듯 하다.

하지만 일본 항복을 미리 알고 있던 조선 총독부는

8월 15일 여운형과 행정권 이양 교섭을 벌이게 되었다.

조선총독부의 목적은 당시 조선에 거주하던 80만 가량의 일본인들의 안전 귀환이었다.

여운형은 이때 조선총독부를 대상으로 다음과 같은 조건을 말하게 된다.


정치범 석방

3개월분의 식량 확보

치안 유지, 건국 운동을 위한 정치 운동에 간섭하지 말 것

학생과 청년 조직에 간섭하지 말 것

노동자와 농민 조직에 간섭하지 말 것 등



8월 16일이 되어서야 비로소 민중들도 광복의 소식을 알게 되었고,

여운형의 주도로 정치범들의 석방과 본격적인 광복의 날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8·15광복 이후 국내 정치 상황]

여운형, 안재홍 등은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하여 활동하면서 건국강령을 발표함

1. 우리는 완전한 독립국의 건설을 기함.

2. 우리는 전 민족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기본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민주주의적 정권의 수립을 기함

3. 우리는 일시적 과도기에 있어서 국내 질서를 자주적으로 유지하며 대중 생활의 확보를 기함

9월 6일에는 조선인민공화국을 선포하여 건국준비위원회를 인민위원회로 개편해 나갔지만..

12월 28일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한국신탁통치안이 결정되고

이후 미국과 소련의 군정이 실시되면서 일체의 활동들은 무력화 되면서,

이후 분단의 비극이 발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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