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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직장인의 한국사 요약정리 2

[한국광복군] 1940년에 김구 등의 주도하에 중국 충칭에서 창설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무장 독립군이다.  김구 (통수권자), 지청천 (총사령관), 김원봉 (부사령관), 이범석 (참모장), 최용덕 (총무처장) 등이 주요 인물이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회복하기 위해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연합군의 일원으로 항전할 것을 목적으로 창설됐다.  미국 CIA의 전신인 OSS와 함께 국내 진공작전을 준비하다가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였으며, 1946년 5월 말에 해산하였다. [대한독립군단] 1920년 6월 홍범도(洪範圖)가 이끈 대한독립군이 중국 지린성[吉林省] 왕칭현[汪淸縣] 봉오동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김좌진(金佐鎭)이 이끈 북로군정서군(北路軍政署軍)이 청산리전투에서 크게 승리하자, 일본의 대부대가 만주 전역에 걸쳐 강력한 보복작전을 전개하였다.  이에 각처에 산재한 독립군은 이를 피하여 소만(蘇滿) 국경지대로 집결하였다. 여기에 모인 독립군부대는 북로군정서·대한독립군·간도국민회·대한신민회·의군부(義軍府)·혈성단(血誠團)·광복단·도독부·야단(野團)·대한정의군정사(大韓正義軍政司) 등 10개 단체였다. 이들은 각자의 고집을 버리고 통합하기로 의견을 모아 각 군단 수령회의 의논 결과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하기로 하였다. 총재에 서일(徐一), 부총재에 김좌진(金佐鎭)·홍범도·조성환(曺成煥), 총사령에 김규식(金奎植), 참모총장에 이장녕(李章寧), 여단장에 지청천(池靑天)을 임명하고 행동통일을 결의하였으며, 병력은 27소대 3,500명이었다. 그 해 12월 대한독립군단 병력 3,500명은 헤이룽강[黑龍江]을 건너 러시아령(領) 자유시 스랍스케 일대에 주둔하였다.  그러나 러시아혁명 후 일본의 강력한 압력에 굴복한 러시아가 독립군에게 무장해제를 요구하였고, 저항하는 독립군과의 사이에 흑하사변(黑河事變:일명 자유시사변)이 발생하였다. 이때 많은 독립군이 희생되었으며, 결국 해산하였다. * 자유시사변 : 1921년 러시아령 자유시(알렉세예...

조선직장인의 한국사 요약정리!!

 무단통치기 (1910~1919) 무단통치기(武斷統治期)는 경술국치(1910) 이후 1919년까지 지속된 조선총독부의 식민 통치기를 일컫는다. 일본 제국 육군 헌병을 주요 경찰 경찰 인력으로 동원하여 치안을 유지하였기 때문에 헌병경찰 통치라고 불리기도 한다. 민생치안 업무도 경찰과 함께 수행했다.   - 헌병경찰제도 : 대한제국 말기 있었던 헌병사령부의 육군 헌병대 병력을 '헌병경찰'로 전환하여 전국에 배치하였다. 경술국치 이후 1년인 1911년 12월 말엔 각 도에 헌병대 본부를 하나씩 설치하고 헌병분대, 헌병 분견소, 헌병 파견소, 헌병 출장소에 이르기까지 총 934개 지점에 헌병대를 배치하여 조선인들을 통제했다. - 일본군 주둔 : 일본은 육해군을 조선 곳곳에 배치하여 무단통치의 무력으로 사용하였다.  - 각종 권리 제약 : 한일합병 이전에 조선통감부가 발의한 신문지법, 출판법, 보안법 등으로 조선인들의 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을 죄다 억압했다. 이러한 기조는 1910년대 내내 유지되었기에 한국문학사에서 1910년대가 공허해졌다. - 토지 조사 사업 : 1912년부터 근대적인 토지 소유권을 확립한다는 명목으로 토지조사사업이 실시하여 조선에서 근대적인 토지 소유 제도가 확립했다. 토지조사사업으로 소작농들의 사회적 지위 추락, 양극화에 일조하였다. 전근대 사회에서 인정되던 소작농들의 권리가 상당부분 부인되고 지주들의 권리만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 우민화 교육 :  민족교육의 온상이었던 서당과 사립학교들을 총독부가 대부분 폐지하였고, 대한제국 정부가 발간했던 구한말의 각종 교과서와 민간에서 발행한 역사서 및 위인전 대부분을 금서로 지정했다. - 회사령, 조선광업령, 어업령, 산림령 등 시행  * But 일본의 강압적인 탄압책은 한국인들의 반발심을 더욱 키울 뿐이었다. 결국 1919년 고종의 사망을 계기로 한국인들의 분노는 3.1 운동으로 크게 표출되었다. 이후 신임 조선총독으로 부임한 퇴역 해군제...

조선직장인 한국사 주요사건 요약 (1920년)

[ 1920년 ]  *청산리 전투 :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난 후 만주에서의 독립 투쟁은 더욱 활발해졌고 이에 일제의 대만주 독립운동 탄압도 점차 강경해져 갔다. 이 과정에서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에서 독립군과 교전한 일제는 마침내 '간도지역 불령선인 초토계획'을 세워 간도지역에 대한 초토화작전을 계획하는 데 이르게 되었다.  이에 1920년 10월 21∼26일, 김좌진이 이끄는 북로군정서 군과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독립군 등이 주축이 된 독립군 부대가 만주 허룽현[和龍縣] 청산리 백운평(白雲坪)·천수평(泉水坪)·완루구(完樓溝) 등지의 10여 차례에 걸쳐 일본군과 전투를 하게 되었고, 청산리전투로 일본군을 대파하게 된다.  * 조선일보(3월5일), 동아일보(4월1일) 창간  * 훈춘사건(10월)   일본 제국이 마적단을 매수하여 훈춘 지역에서 일본 제국 영사관을 공격해 한인들을 공격할 명분을 만든 사건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학설이 워낙 많고 주장이 다양해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알기 힘들다.  어찌되었든, 1920년 일본군이 마적토벌을 구실삼아 훈춘의 조선인과 독립운동가들을 대량 학살하였고, 이를 훈춘사건이라한다.  *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10월 28일)  -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1일에 중국 상하이에서 독립운동가들이 세운 임시 정부이다. 국민의 대표가 정치를 이끄는 민주 공화제를 표방했다. 1945년 11월에 김구 등 주요 인사들이 귀국할 때까지 일제와 맞서 싸우며 우리나라를 대표했다.